북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북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Northern Ireland national football team'''
'''정식명칭'''
Northern Ireland national football team[1]
'''FIFA 코드'''
NIR
'''협회'''
아일랜드 축구 협회 (IFA)[2]
'''연맹'''
유럽 축구 연맹 (UEFA)
'''감독'''
이안 바라클로 (Ian Baraclough)
'''주장'''
스티븐 데이비스 (Steven Davis)
'''최다출전자'''
스티븐 데이비스 (Steven Davis) 124경기
'''최다득점자'''
데이비드 힐리 (David Healy) 36골
'''홈 구장'''
윈저 파크 (Windsor Park)
'''첫 국제경기 출전'''
VS 잉글랜드 (0:13 패),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1882년 2월 18일)
'''최다 점수차 승리'''
VS 웨일스 (7:0 승),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1930년 2월 1일)
'''최다 점수차 패배'''
VS 잉글랜드 (0:13 패),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1882년 2월 18일)
'''별칭'''
Green & White Army (녹백군), Norn Iron (북아일랜드인)
'''월드컵'''
출전 3회, 8강 2회 (1958, 1982)
'''유로'''
출전 1회, 16강 1회 (2016)
'''현 FIFA 랭킹'''
45위
'''현 Elo 랭킹'''
45위
'''유니폼 컬러'''
'''홈'''
'''어웨이'''[3]
'''상의'''
''' '''
'''5'''


''' '''
'''8'''


'''하의'''
'''5'''
'''8'''
'''양말'''


1. 개요
2. 역사
3. 역대 감독
4. 역대 전적


1. 개요


북아일랜드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공석이다. 녹백군(Green & White Army)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현재 유니폼 스폰서는 아디다스 이다.

2. 역사


역사가 상당히 복잡한데, 북아일랜드 국가대표팀의 역사는 바로 북아일랜드 및 현대 독립국 아일랜드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과 북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중 '원조'는 후자이며 지금의 북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이 바로 원래 아일랜드 축구 협회(IFA)의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이었다.
[image]
과거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
1880년 IFA가 창설되어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구성하였고, 1950년까지 아일랜드 섬의 모든 선수들을 선발하였다. 그러나 남아일랜드가 1921년에 영국-아일랜드 전쟁을 계기로 영국으로부터 자치령의 지위를 얻어 아일랜드 자유국이 되었고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남게 되었다. 독립한 아일랜드 자유국은 IFA에서 떨어져나가 새로 자신들만의 '아일랜드 축구 협회(FAI)'를 출범시켰고 기존의 IFA는 북아일랜드에서 활동을 이어나갔다. IFA와 FAI는 각자 자신들이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아일랜드 축구 협회'임을 주장하며 국경 너머 서로의 영토에서 자신들의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을 차출하는 등 서로 대립하였다. 이 꼴을 보다 못한 FIFA가 아일랜드-북아일랜드 경계를 따라 두 협회의 선수 선발 권한을 분리하는 결정을 내렸고 1946년 FAI가 먼저 FIFA의 결정을 수용하여 북아일랜드에서의 선수 선발을 중단하였다. 반면 IFA는 한동안 남아일랜드에서의 선수 선발을 계속 이어가다 1950 FIFA 월드컵 브라질 지역예선을 계기로 남아일랜드에서의 선수 선발을 중단하였다. 마지막으로 1953년 FIFA가 'IFA와 FAI 모두 아일랜드 전 지역을 대표하는 아일랜드 축구 협회를 주장할 수는 없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IFA는 북아일랜드, FAI는 아일랜드 공화국을 대표하는 축구 협회로 완전히 갈라지게 되었다. 다만 FAI가 IFA로부터 분리해나간 형태인고로 분리 이전의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의 역사는 북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이 승계하게 되었다.
한때 우수한 선수를 보유한 덕에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보다 월드컵 무대를 먼저 밟았다. 1958 스웨덴 월드컵 예선 당시 8조에 속한 이탈리아를 승점 1점차로 따돌리고 본선 티켓을 땄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역시 월드컵에 진출했으나 아일랜드 공화국은 잉글랜드에 밀려 본선을 못 갔다.
역사상 처음으로 진출한 1958년 스웨덴 월드컵 본선에서 아일랜드 국적인 피터 도허티 감독의 지휘 하에 해리 그렉[4], 빌리 빙엄, 피터 맥팔랜드[5], 대니 블랜치플라워[6] 등의 우수한 선수들을 보유한 북아일랜드는 독일(당시 서독), 체코슬로바키아, 아르헨티나와 한 조에 속했다. 아르헨티나에 1-3으로 졌으나 체코슬로바키아를 이기고, 독일과 2-2로 비겨 1승 1무 1패로 동률을 이룬 체코슬로바키아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연장 승부 끝에 2-1로 이겨 본선에 올랐다. 당시 경기에서 피터 맥팔랜드가 전반 44분 동점골을 넣고 추가 시간에 결승 골을 넣었다고 한다. 이후 팀은 8강에서 프랑스에서 패했지만 맥팔랜드가 팀 전체 득점인 6골 중 5골을 혼자 넣으면서 박수를 받았다.
이후 북아일랜드는 훗날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레전드인 조지 베스트가 한창 활약했던 1960~70년대에는 월드컵이건 유로 대회건 죄다 나가지 못했다. 그러다가 베스트가 국대에서 은퇴한 뒤인 1982 스페인 월드컵1986 멕시코 월드컵에는 본선 진출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1982 스페인 월드컵에서는 1958년 스웨덴 월드컵 당시 황금세대 멤버였던 빌리 빙엄 감독, 골키퍼 팻 제닝스, 주장 마틴 오닐, 미드필더 겸 스트라이커 노먼 화이트사이드, 미드필더 새미 매킬로이, 레프트백 새미 넬슨 등이 한데 어우러진 조직력으로 조별 리그에서 개최국 스페인을 2위로 밀어내고 조 1위로 당당히 2라운드에 진출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에 2-2로 비기고, 미셸 플라티니를 위시한 '마법의 사각형'이 이끄는 프랑스에 1-4로 지면서 4강 진출에 실패했다.
그 다음에는 나이젤 워딩턴, 앨런 맥도날드 등의 젊은 선수들이 가세하면서 절치부심 끝에 출전한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조별 리그에서 알제리에 비기고, 스페인과 브라질에 연달아 지며 광탈당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그 사이 마틴 오닐, 노먼 화이트사이드, 팻 제닝스 등 황금시대의 멤버들이 은퇴한 북아일랜드는 월드컵 본선에서 못 보는 팀에 단골로 들어가는 약체 팀으로 전락하고 말았는데, 여기에는 종교 갈등도 한 몫 했다. 역사적으로 뿌리깊은 구-신교 갈등이 잔존하는 상황에서 가톨릭 신자인 닐 레넌이 일부 신교 종파주의자에게 살해 협박을 받아 2002년에 대표팀에서 은퇴한 것도 이러한 현실을 말해준다. 오죽하면 훗날 레넌이 "벨파스트의 윈저 파크 스타디움은 가톨릭 신자들이 겁을 먹어하는 곳이었다."라고 말하게 되었을까?
최근 들어 신교와 구교 간에 화해 무드가 형성되고 잉글랜드와 아일랜드 간에서도 갈등이 완화되면서 북아일랜드의 축구 선수들이 한결같이 축구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북아일랜드 축구가 다시 활력을 되찾기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상대가 행운인 유로 2016에서는 초반에 선전하고 있다. 그래도 루마니아, 그리스에게 뒤쳐질 예상이 컸었다. 북아일랜드가 조예선에서 헝가리를 2-1, 페로 제도를 2-0으로 이길 때만 해도 약체를 상대로 이겼기에 별로 큰 주목을 받지못했으나 그리스 원정에서 2-0으로 이기며 3전전승으로 조 1위로 올라섰다. 결국 북아일랜드는 6승3무1패, 조1위를 차지하며, 유로 2016 본선에 진출했다.[7] 그리고 본선 조별 예선에서 독일과 폴란드에 0-1로 졌지만 우크라이나를 2-0으로 이기며 1승 2패, 3위로 유로 16강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자책골을 넣으며 16강에서 웨일스에 1:0으로 패하며 탈락.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 오랜만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아졌던 상황이다. 같은 조의 절대강자 독일에게 2패를 당하긴 했으나 체코를 홈에서 잡고 아제르바이잔, 노르웨이, 산마리노를 상대로 착실히 승리하여 1경기를 남겨두고 6승 1무 2패로 조 2위 확정, 마지막 노르웨이 원정에서 0-1로 지긴 했지만 플레이오프에 무난히 진출하였다. 유로 2016 때 보여준 역습축구가 한층 진화했다는 평가. 약팀으로 평가받는 아제르바이잔, 산마리노에게 5골 이상을 못넣는 그다지 강하지 않은 공격력을 지녔지만, 비슷한 전력으로 평가받는 체코와 노르웨이에게 모두 2-0으로 승리할 만큼, 박빙의 승부에서 오는 몇번의 찬스를 득점으로 연결시키는 경제적인 축구를 구사한다. 플레이오프를 뚫고 본선에 진출하게 된다면 통산 4번째 진출이자 32년만의 본선진출이었다. 하지만 스위스에 0-1로 지면서 1무 1패로 플레이오프를 뚫지 못하며 탈락했다. 북아일랜드로선 분노할 일이 많은데, 2경기 모두 오심이 상당했다. 무엇보다 2번째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줘야할 반칙까지도 당했음에도 넘어갔다.
유로 2020 예선에서 네덜란드, 독일과 한 조에 속하는 불운으로, 결국 조 3위로 밀려나 본선 직행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네이션스 리그 성적으로 얻어낸 플레이오프에 참여하게 되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승부차기 끝에 따돌리고 플레이오프 결승까지 진출했다. 결승에서도 슬로바키아와 연장까지 가는 초접전을 벌였지만 연장 후반 결승골을 먹으며 1-2로 역전패해 유로 연속 본선진출에는 실패했다. 또한 같은 시간 스코틀랜드는 세르비아를 승부차기 끝에 누르고 본선 진출에 성공하며 1958 스웨덴 월드컵 이후 실로 오랫만에 가능할 뻔 했던 '''영연방 4개국 전원 본선진출''이 아쉽게 무산되었다. .
주요 선수로는 조니 에반스, 크레이그 카스카트, 스티븐 데이비스, 스튜어트 댈러스, 패디 맥네어, 자말 루이스 등이 있으며 니얼 맥긴[8]은 짧게나마 K리그 광주 FC에서 활약한 적도 있다. 과거 아론 휴즈와 가레스 매컬리가 주축 수비수였다.
한국과의 전적은 1전 1승으로 우세. 그 동안 A매치와 연령별 대표팀과의 경기 역시 한번도 치러지지 않았으나, 신태용호와 2018년 3월 24일에 북아일랜드 홈 벨파스트에서 열린 평가전에서 한국에 2-1로 역전승을 거뒀다.

3. 역대 감독




4. 역대 전적



4.1. FIFA 월드컵


'''역대 월드컵 전적 순위 : 39위'''
'''⑧⑫'''
년도
결과
순위
경기



득점
실점
1930 우루과이 월드컵
불참
1934 이탈리아 월드컵
불참
1938 프랑스 월드컵
불참
1950 브라질 월드컵
예선 탈락
1954 스위스 월드컵
예선 탈락
1958 스웨덴 월드컵
'''8강'''[9]
7
4
1
1
2
4
9
1962 칠레 월드컵
예선 탈락
1966 잉글랜드 월드컵
예선 탈락
1970 멕시코 월드컵
예선 탈락
1974 서독 월드컵
예선 탈락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
예선 탈락
1982 스페인 월드컵
2라운드[10]
10
5
1
3
1
5
7
1986 멕시코 월드컵
조별리그
21
3
0
1
2
2
6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예선 탈락
1994 미국 월드컵
예선 탈락[11]
1998 프랑스 월드컵
예선 탈락
2002 한일 월드컵
예선 탈락
2006 독일 월드컵
예선 탈락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 탈락
2014 브라질 월드컵
예선 탈락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 탈락
2022 카타르 월드컵
?
?
?
?
?
?
?
?
합계
8강 1회
3/21[12]
13
3
5
5
13
23
공교롭게도 아일랜드와 '''승점, 월드컵 진출 횟수, 경기 수, 최고성적이 모두 같다'''. 다만 아일랜드는 2승 8무 3패, 북아일랜드는 3승 5무 5패로 승리는 북아일랜드가 하나 더 많으며, 대신에 아일랜드가 골득실에서 앞서는데 월드컵에서는 골득실 > 승자승을 우선 순위에 두므로 북아일랜드가 순위에서 뒤진다. 북아일랜드가 아일랜드 공화국 독립할 때 여러 가지 이유로 같이 독립을 못하고 영국에 남게 된 일종의 식민지인데, 북쪽 귀퉁이에 있는 촌동네답지 않게 월드컵 구경은 먼저 해봤다. 세 번이나 올라올 동안 아일랜드는 월드컵을 구경도 못해봤고, 반대로 북아일랜드가 마지막으로 월드컵에 올라온 다음 대회에서 아일랜드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나라들과의 상대전적은 브라질 1패(1986), 독일 1무(1958), 아르헨티나 1패(1958), 프랑스 2패(1958, 1982), 스페인 1승 1패(1982, 1986), 세르비아 1무(1982), 체코 2승(1958(2번)), 오스트리아 1무(1982), 알제리 1무(1986), 온두라스 1무(1982)이다.
대륙별 상대전적은 유럽 3승 3무 3패, 남미 2패, 북중미 1무, 아프리카 1무를 기록중이다.
한경기 최다득점 기록은 1958년 조별리그 서독전 2:2 무, 플레이오프 체코슬로바키아전 2:1 승, 1982년 2라운드 오스트리아전 2:2무로 총 두 골이다. 월드컵 본선에서 세 골 이상 못 넣어본 팀들 중 대한민국, 카메룬 다음으로 순위가 높다. 한경기 최다실점 기록은 1958년 8강 프랑스전 0:4 패, 1982년 2라운드 프랑스전 1:4 패이다. 총 네 골을 허용했으며 공교롭게도 두 경기 모두 프랑스전으로 프랑스에게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다.
밑동네 아일랜드에게 제대로 약 올리듯 세 번의 본선에서 두 번이나 2라운드에 진출한 놀라운 저력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1958년 체코슬로바키아와의 플레이오프에서 2:1 승, 1982년 스페인과의 조별예선 1:0승 경기는 월드컵 11대 이변'''에 속하기도 한다. 11대 이변에서 두 경기가 가지고 있을 정도로 고춧가루를 제대로 뿌리는 나라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이 이후로 본선에 밟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함정. 유럽예선이 워낙 경쟁이 치열하게 때문에 지금은 3~5위권을 왔다갔다하는 전력이다. 차라리 유로에서 모습을 보게 될 가능성이 높다.

4.2. UEFA 유로


년도
결과
순위
경기



득점
실점
프랑스 1960
불참
스페인 1964
예선 탈락
이탈리아 1968
예선 탈락
벨기에 1972
예선 탈락
유고슬라비아 1976
예선 탈락
이탈리아 1980
예선 탈락
프랑스 1984
예선 탈락
서독 1988
예선 탈락
스웨덴 1992
예선 탈락
잉글랜드 1996
예선 탈락
벨기에/네덜란드 2000
예선 탈락
포르투갈 2004
예선 탈락
오스트리아/스위스 2008
예선 탈락
폴란드/우크라이나 2012
예선 탈락
프랑스 2016
16강
16
4
1
0
3
2
3
유로 2020
예선 탈락[13]
합계
16강 1회
1/15
4
1
0
3
2
3
유로 2008 예선에서는 오랜만에 메이저무대를 밟을 가능성이 컸을 정도로 초반 돌풍이 엄청났다. 초반 6경기를 치뤘을때는 4승1무1패로 무려 스페인과 스웨덴을 제치고 조1위 자리에 있었다. 이 때 주포 데이비드 힐리의 득점행진은 경이로울 정도였는데 스페인과의 홈 경기에선 1-2로 끌려가다가 2골을 더 넣으며 헤트트릭을 기록, 역전승을 거두는데 1등 공신이 되었고 아이슬란드와의 경기에서도 헤트트릭, 스웨덴과의 경기에서는 결승골 포함 2골을 넣으면서 돌풍의 중심이 되었다. 다만 당시 감독이었던 로리 산체스가 예선 도중 풀럼의 러브콜을 받고 감독자리에서 물러난 후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결국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다만 힐리의 13골은 유로예선 최다골 기록으로 여전히 유효하다. UEFA 유로 2016 예선에서 루마니아그리스를 밀어내고 1위를 차지하며 사상 첫 유로 본선에 진출했고 16강까지 진출하는 저력을 보였다. 특히 부족한 득점력을 경기당 1실점으로 틀어막는 밀집수비가 빛을 발하며 다음 대회를 더욱 기대하게 만들었다.

5. FIFA 센추리 클럽 가입 선수


순위
이름
경기 수
기간
1
'''스티븐 데이비스'''
124
2005~현재
2
팻 제닝스
119
1964~1986
3
아론 휴즈
112
1998~2018

[1] 영어[2] 1880년 벨파스트에서 조직되었다. 아일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조직하는 아일랜드 공화국 축구 협회 (FAI)와는 다르다. 그래서 북아일랜드 축구협회라고 번역하기도 한다.[3] 예전에는 흰색, 파랑, 네이비, 검정 등의 어웨이 유니폼이 나왔다.[4] 뮌헨 비행기 참사 당시 생존한 맨유 골키퍼.[5] 1952년부터 10년간 아스톤 빌라에서 활약한 명선수.[6] 1960년대에 토트넘에서 활약한 레전드 선수.[7] 1986 FIFA 월드컵 이후 30년만에 진출한 메이저대회가 되었다.[8] UEFA 유로 2016/C조 우크라이나와의 2차전에서 막판 결승골을 터트렸다.[9] 체코슬로바키아와 승점이 같아 재경기 끝에 8강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에서 2:1로 체코를 누른 것은 월드컵 11대 이변에 포함된다.[10] 조별예선에서 스페인을 누르고 조1위를 차지하며 2라운드 진출. 당시 스페인을 1:0으로 이겼는데 이 경기 역시 월드컵 11대 이변에 포함된다.[11] 1950년 영국이 월드컵 참여를 선언한 이래로 '''유일하게 영국의 네 팀 모두 전멸한 대회'''[12] 월드컵 본선 출전 비율[13] 같은 지역의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까지 진출하는 와중에 이 팀만 탈락했다.